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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곡과 임진왜란

작성일 : 2024.04.30 09:58 수정일 : 2024.04.30 19:30

작성자 : 임세기

여러 방면에서 훌륭한 이율곡은 특히 임진왜란에서도 그 위대함이 돋보인다.

전쟁과 당파 싸움으로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정확히 직시하여 왜의 침입을 예상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선조 임금이나 대신들에게 늘 왜의 침입을 대비하여 10만대군양병설을 줄기차게 주장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예지력이 뛰어난 것은 침입을 예상한 것뿐만 아니라 왜가 몇 년도에 침입하고 전쟁 발발 후 임금의 피난 경로도 정확히 맞추었다는 사실이다.

이율곡은 임금과 육조신하들에게 늘 우리가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닙니다. 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분명 조만간 침입이 있을 것입니다.”하면서 주의를 상기시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1584년도에 죽고 8년 후 1592년에 왜의 침입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꾸준히 외쳤던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 바로 1592년을 예상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쟁이 발발할 것을 예상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호소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자 마음이 상할 때마다 그의 말동무 '유지'와 더불어 그의 본가가 있는 임진강 근처의 화석(花石亭)에서 늘 기름칠을 하면서 서러운 마음을 달래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주위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화가 난다고 정자에 기름칠을 해서 무엇이 득이 되겠습니까?” 여쭈어 봐도 그저유지와 더불어 기름칠만 하던 것이었다.

그러한 의문은 그가 임종을 맞이하여 “1592년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아마도 어두운 한밤에 임금님이 여기를 통과할 것이니 그때 이 정자에 불을 질러 임금님이 무사히 강을건널 수 있게 하거라.”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풀렸다.

실제로 모든 것이 이율곡 예언대로 15924월에 도요토미는 부산항구로 침입해 들어왔으며 그해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을 가게 되는데 임진강 화석정에 도달했을 때에는 칠흑 같은 어둠과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강을 건널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마을 주민들이 생각한 것이 바로 이율곡의 유언으로 횃불로 화석정에 불을 붙이자 몇 년간 기름을 먹은 정자는 그 밝기가 대낮 같았으므로 선조 임금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율곡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13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7세에 지은 화석정의 시는 우리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

잠시 시 감상을 해봅시다.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숲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시인의 생각은 끝이 없어라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먼 강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강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고 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야 어디로 가느냐?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울음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화석정(花石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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