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06.26 09:33 수정일 : 2025.07.07 10:16
오늘의 맛
토마토를 먹는다 과즙이 툭, 터질 때
할머니가 허리 구부리던 밭 냄새가 난다
이랑과 이랑 사이 그늘에 숨어 들어가
익은 것과 익지 않은 것을 보면서
붉게 물들다 곧 떨어져 나갈 빈자리를 생각했다
과일이 먹고 싶으면 냉장고 문을 열지 않았다
가지에 매달린 미지근한 토마토를 땄다
밑으로 수박이 뒹굴고
옆으로 불쑥 참외가 보였지만
시작도 끝도 변하지 않는 이름을 가진
토마토에 손이 더 많이 갔다
부르지 않아도 뒤돌아볼 것 같은
금방 들키는 얼굴 같은
그 붉은 두근거림이 좋아서
약속 잡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사람처럼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처럼
오늘도 꼭지만 남을 때까지 토마토를 조용히 먹는다
붉은 태양이 산 아래로 사라진다
<작품 해설>
하늘에 떠오른 붉은 태양은 토마토처럼 오늘도 진하게 익어간다. 덜 익은 ‘내일’과 이미 익어버린 ‘어제’ 사이를 걷는 동안, 시간은 붉은 과육처럼 마음 안에서 천천히 터진다. 속을 숨기지 않고, 미지근하게 익어가는 것이 오늘을 버티게 하는 진짜 맛이다. 삶은 강렬한 자극이 아니라 오래 씹을수록 더 짙어지는 속내로 완성된다. 그런 하루를 오늘도 조용히 받아 삼킨다.
<성은주>
2010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창』, 그림책 『한 걸음씩 꽃피는』이 있음
현재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강의전담교수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