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보는 세상

시로 보는 세상

장마의 서시

작성일 : 2025.07.03 09:11 수정일 : 2025.08.27 09:52

     장마의 서시 
-여름은 장마를 품어야 완성된다    

 

먼 남쪽 바다의 열기가 기압골을 어루만질 무렵
여름은 푸른 잎맥들 사이에서 뜨거워지고 있었다

벼랑 끝에서 핀 해가 지평선 위로 여명을 드리우면
멀리 먹구름 아래로 장마가 천천히 밀려온다

마치 오래전부터 예정된 수순처럼 
서로를 피하지 않는다
여름은 장마를 받아들이고 장마는 여름 속에 잠긴다

하루가 열흘처럼 눅눅하고
기억의 서랍까지 곰팡이 슬 즈음
세상 모든 색이 씻기는 풍경 앞에 있게 된다

한바탕 쏟아지는 빗줄기는 단순한 물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용서이며 기다림이고
잊힌 이름을 다시 부르는 기도다

그 사이 나무는 더 우거져 초록으로 팔월을 머금는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햇살과 나뭇잎과 아이들 물놀이가
다시 시작된다
그러니 피하려 하지 말자
이 계절의 열렬한 재회를

여름과 장마는 서로 피할 수 없다
다만 섞이고 겹쳐 계절로 깊어갈 뿐이다
그것이 삶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는 방식이리니

 


<작품 해설>
지리한 장마가 시작되면 마음에도 곰팡이가 생기듯 우울해지고 온몸 구석구석이 반란을 일으킨다. 나이가 들면 몸이 먼저 습도를 읽고 비 소식을 알리는 것처럼 계절의 순리를 피하려 하지 말자. 그것 또한 삶이라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오는 자연의 선물이려니
 


<노금선>
- 문학박사, 시인, 시낭송가
- 국제 시사랑협회 이사장
- 시집 『꽃멀미』 외 6권
- 대전 문학상, 천등문학상, 2011년 올해의 예술가상, 대한민국 시 낭송 대상 외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