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07.10 23:35 수정일 : 2025.07.25 12:54

지난 4월23일, ‘제3대 대전광역시바둑협회’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최재만 회장의 대전시 서구 정림동 사무실에 들어서니 당초 상상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바둑협회장’에 취임했다면, 지난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결을 벌였던 이세돌 9단이나 세계 최강인 신진서 9단, 박정환 9단 정도는 아니더라도 바둑 실력은 도사(?)급 일 것이라는 예상이었기 때문이다. (도사급 실력 여부 확인은 후반부 끝에 정답)
또, 사무실에 들어서면 기원(棋院) 크기 규모 구석퉁이(?) 정도 공간에는 바둑판이 놓여 있을 것 이라고 예견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 것.

사무실 구조는 보통 일반 회사 사무실 분위기와 비슷했지만 특이한 것은 텔레비전이 가득(?) 넘쳐나 한 눈에 들어온다.
사무실 한 쪽 벽은, 4대의 대형 텔레비전으로 완전히 벽을 가려, 텔레비전 수상기가 없는 일반 회사와는 다른 정서가 흐르고 있다.

더구나 송출되고 있는 방송은 지상파나 뉴스전문 채널 방송 등이 아닌, ‘SmileTV Plus’와 ‘TVasia Plus’, ‘WeeTV’였던 것.
그 이유는, ‘대전시바둑협회장’ 직함은, 대전 바둑인의 저변 확대와 대전 바둑 발전을 염원하는 최 회장의 서번트 봉사로, 실제 직업은 시청하고 있는 방송을 거느린 <TRA Media> CEO에 <진중IT>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업체를 운영하면서 바둑협회장까지 3개의 바퀴를 순조롭게 굴리고 있는 최재만 회장은 나이 7순 중반에 들어섰지만, 밝은 성격으로 10년 이상은 젊어 보인다.
충남 보령군(현 보령시) 오천면 갈현리에서 부친 최성희 씨와 모친 이상열 씨 사이 6남매 (5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난 최 회장은, 주민등록 상 1951년생으로, 만 나이는 74세! 그러나 옛날 농촌에서 농사일로 바빠 출생신고가 늦었듯이 실제 출생은 한 해가 빠르단다.

- 보령중학교 시절 -
보령 주포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거쳐 보령중학교에 진학한 최 회장은, 1967년 시골 마을 촌뜨기(?) 학창 생활을 청산하고 대전 유학길에 오른다.
60년 대 대한민국은 식량이 부족, 등교하면 친구에게 “아침 밥 먹고 왔다!”라는 말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지독한 보릿고개 시절!

- 대전 중도공고 시절 -
이 시기는 박정희 대통령이 ‘식량 증산’과 ‘과학입국’을 부르짖을 때로, 기술계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해 취직해 돈을 벌면 최고로 성공(?)한 사람으로 추켜 세웠었다.
중학교를 마친 어린 소년 최재만은 학문적 연구보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미래 로드맵은 기술자 엔지니어가 되는 것으로 대전의 기술계고등학교 유학을 결심한 것이다.

- 대전 중도공고 시절 -
대전 중도공고(계룡공고 교명 변경- 현, 계룡디지텍고)에 합격, 전자 전공 기술을 익힌 후, 고도의 기술 지식을 위해 대전공업대학교(현 대전한밭대) 전자공학과에 합격해 제도권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60년 대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출산율이 최고조로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국가 캠페인이 전개될 정도였다.

- 고교 시절 고향 방문 -
초·중학교는 2-3부제 수업이 기본이고, 고등학교는 한 반에 80명 가까운 콩나물 교실로, 군입대 자원이 넘치면서 정부는 장남은 부모를 봉양하라고 군 복무도 제외시키는 여유(?)로, 저출산 시대인 요즘과는 격세지감이다.
6남매 중 장남이었던 최 회장은 결국, 군대 구경조차 할 수 없었고, 재학 중 ‘국가공인 무선설비기사자격증’을 취득한 최 회장은, 졸업과 함께 시골 중학생 시절 그리던 직장인의 꿈을 이룬다.

- 최재만 엔지니어(좌측 두 번째) -
1971년 2월, 대학 졸업 후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부) 소속 ‘KBS 식장산중계소’에서 방송 송출을 담당,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1년 후 충남도청 무선통신망 시설에 참여하는 엔지니어로 옮겼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혼자 생활하면 씀씀이가 많아 1만 3천원 정도의 박봉으로는 저축의 여유가 없었던 당시 20대 초반의 열혈 청년 최재만은, 1년 반 기간의 공무원 생활을 뒤로 하고 충청북도 청주로 눈을 돌린다.
청주문화방송(현, MBC충북)의 기술직사원 채용시험에 응시한 청년 최재만은 공무원 시절보다 3배 많은 급여와 총각 신세를 탈피하겠다는 2가지 야무진(?) 목표를 세우고 이직했다고 파안대소(破顔大笑) 한다.
유망 엔지니어 청년 최재만은 두 가지 목표를 달성, 청주MBC에서 근무한 지 3년 째 되던 1974년 지인의 소개로, 한 살 아래인 당시 25살이었던 김연옥 여사에게 프러포즈, 결재(?)를 받아 결혼하고 다음 해에는 첫 딸까지 횡재(?)하는 복을 받는다.
봉급도 많고 총각 딱지도 떼고 자녀까지, 그것도 예쁜 딸을 얻으니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었던 딸 바보에 사랑맨이었던 최재만 엔지니어는 5년간의 청주 생활을 청산하고 대전 이전의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이번에는 대전MBC 공채에 도전, 대전 입성에 성공해 1년 후인 1978년 둘째 공주를 품에 안고 아들만 두고 있는 사람들의 부러움인 소위, ‘딸딸이 아빠’ 행렬에 등극한다.
두 명의 손자와 손녀까지 얻은 최 회장은 지금도 두 자녀가 현직에 재직(TRA 미디어 총괄&구찌코리아 이사)하는 등 아빠의 열혈 일 중독에 질쎄라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귀뜸한다.
안락한 가정에 대전MBC 기술직 엔지니어 생활을 17년간 영위하던 ‘딸딸이 아빠’에게 새로운 유혹이 들어오는 대사건(?)이 발생한 것은 1994년!
대전지역 첫 민영방송인 대전방송(TJB) 개국 준비로, 대전시 효동(옛 우성사료 사옥)에서의 첫 전파 발사 준비 책임자로 대전방송에서의 최초 스카웃 타깃이 바로 최재만 엔지니어다.

스카웃을 당하려면(?) 당연히 이직 전 대전MBC의 조건보다 높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당시 스카웃 조건이 어떠했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 “봉급은 거의 두배, 보너스는 1000%”라고 귓속말로 전해준다.
여기다 이직 전 차장 직급에서 대우(직급)도 거치지 않고 부장으로 직진한 후, <TJB 대전방송>이 현재의 유성구 도룡동에 신사옥을 건설하고 방송 송출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대 역사를 주도했다.

- TJB대전방송 이전식장 앞 최재만 회장(좌측 첫째) -
최재만 회장은 재직 기간에 기술국장과 경영국장, 신사옥건설본부장(이사 대우)으로 58세 정년 퇴직한 이후에도 다시 부름을 받아 2012년까지 거의 5년간 더 엔지니어 장인으로 방송기술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이 기간, 은행동 으능정이거리 스카이로드 영상 송출을 위한 기술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지금도 이곳을 걷다 보면 “맨땅에서 헤딩한다”는 신념으로 기술시스템 작업에 혼신을 쏟았다고 회고한다.
최 회장은 이후 잠시 휴식기를 가진 후에 2015년부터 지금의 <TRA미디어> CEO로, ‘SmileTV Plus’, ‘TVasia Plus’, ‘WeeTV’ 등 3개 텔레비전 방송과 함께, 2017년에는 정보통신업종인 <진중> IT 기업도 신설, 운영하고 있다.
현재 최 회장 사업을 돕는 파트너는 대전MBC 재직할 때와 TJB대전방송 이직 시 TJB로 건너온(?) 후배 엔지니어 강기수 이사, 그리고 이상권 본부장이 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 강기수 현 이사, 최재만 회장(좌로부터) -
“대전MBC 재직 때 였는데요! 칼라TV 시대를 맞아 칼라 방송을 해야하는데 당시 2억원(지금은 10억)에 달하는 칼라송신기 구입 예산이 없어 흑백송신기를 칼라로 개조하는 작업을 선배인 김현수 국장님(당시 부장)과 해결한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며 지그시 눈을 감고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문화공보부, 도청 공무원, 그리고 청주MBC, 대전MBC를 거쳐 TJB대전방송으로 이어지는 재직 기간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사회 초년생 시절, 유선 전화만 있던 당시, 충남도청 각 시군의 무선통신망을 연결, 무전기로 충남지사(당시 민유동)가 도내 시장 군수들과 동시에 통화하면서 공무를 토의할 수 있도록 해 충남지사가 흡족해 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TJB대전방송 개국 송출을 위한 기술 산파역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방식의 방송 전환, 국내 방송 사상 첫 TV 식장산 송신소의 무인화를 시초로 전국 송신소의 무인화로 정립시킨 선구자!

아마추어무선사(Ham) 자격증을 따 ‘93년 대전엑스포’ 기간에 국내는 물론, 전 셰계로 홍보했을 때의 보람은 지금도 생생하단다.
그리고, 송신소 무인화를 주도해 인건비 절약 성과로 장관상까지 수상했지만, 한 편에서는 “최재만 엔지니어 때문에 일자리를 뺐겼다”는 뒷 얘기를 듣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 엔지니어로써 기술 연구 등 일에만 몰두, 자녀에게 다정한 A학점 아빠, 그리고 남편이 되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일에 쫓겨 대인관계에 충실하지 못한데다, 후배 동료들에게도 많은 애정을 주지못한 점이 아쉬웠다고 회고한다.

- 이상권 본부장-최재만 회장-김연옥 대표-강기수 이사(왼쪽부터) -
따라서 최재만 회장은 8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지금처럼 건강해 회사까지 더 성장한다면 후배나 동료 등 일자리를 창출하고, “어깨에 지고는 못가고 먹고는 간다”고 할 정도로 지금도 한 두병의 약주(?)를 즐기는 여생을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있다.
대전 중구 산성동(한밭가든아파트) 한 곳에서만 4명의 가족이 살다가 이제 두 딸과 손주는 서울에 거주, 지금은 부인과 함께 단 둘이 35년 가까이 살고 있다.

50여 년간 방송통신 만능 엔지니어 장인으로, 지금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재만 대전광역시바둑협회장은 자신의 두 곳 회사와 협회 등 세 마리 토끼에 싱싱한 풀의 샘을 공급하고 있다.
바둑 실력은 6-7급 정도이지만 협회 회원들의 화합을 주도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최재만 회장은, 엔지니어 장인으로 ‘더 멀리, 더 높이’ 승천하기 위해 힘차게 날갯짓을 펴고 웅비하고 있다.
<수상> ‘정보통신부장관상’, ‘한국방송대상 기술상’,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 각종 표창, 감사장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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