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보는 세상

시로 보는 세상

햇살

작성일 : 2025.07.29 10:06 수정일 : 2025.08.14 09:54

     햇살     

 

정동 골목을 빠져나와
할아버지가 끌고 가는 
손수레 위의 빈 종이 박스
그 위에 할아버지의 햇살이 모여 있다
날마다 슈퍼마켓 안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할아버지는 그냥 배가 부르다
파지 공장으로 가는 고물상에서
오늘도 6800원의 알찬 땀방울을 
하얀 봉투 속에 담아 오는
할아버지의 입가엔 행복한 미소

벌써 5년째 누워 있다는
아내의 수발을 들며
늦은 점심을 함께 한다
그래도 방안에 할멈이 있어 훈훈하다

할멈 오늘은 벌이가 쏠솔햐

입가에 미소를 띤
할머니 손끝이 꼬무락 댄다

오늘도 손수레 위엔
파지가 가득 실려 있고
골목을 빠져나오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햇살이 나비처럼 내려앉는다

 


<작품 해설>
도시 주변 웬만한 골목을 한 바퀴 돌면 슈퍼나 가정집 또는 가게에서 모아 놓은 빈 종이 박스를 한 아름 얻을 수 있다. 어느 집은 빈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져 가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모아주기도 한다. 오늘도 도시의 한 골목엔 어김없이 파지들이 나온다. 언제나 그곳에 할아버지의 리어카가 있다. 이십여년째 하고 있다는 80이 넘은 할아버지는 피곤하거나 실은 표정 없이 파지만 있으면 그냥 행복한 모습이다. 하루에 한두 번 파지를 가득 싣고 고물상을 드나들면서 누워 있는 할멈의 수발을 든다. 그래도 요양원 보내는 것 보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골목을 빠져 나오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나비처럼 내려앉는 햇살을 보면서 그냥 가슴이 찡해옴을 느낀다.  


<김명수>
- 1980-82: 현대시학 추천 문단 활동
- 공주교대, 충남대대학원, 공주대대학원, 성산효대학원대학교
- 박목월, 박두진 시에 나타난 효사상 연구-효학 박사학위
- 새여울시문학회 창립, 대전시인협회 창립, 대전문협, 충남문협, 충남시협, 한국문협, 한국시협 회원
- 전 충남문협회장 역임, 충남시협회장 역임
- 시집 『질경이꽃』, 『어느농부의 일기』, 『여백』, 『아름다웠다』, 『11월은 바람소리도 시를 쓴다』, 『바람에 묻다』, 『수목원에 비가 내리면』, 『능소화 꽃이 피면』 등
- 웅진문학상, 대일비호대상, 충남문학대상, 대전시인상, 충남시인상, 충남도문화상, 한국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