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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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계절

작성일 : 2025.07.31 10:06

     당신의 계절*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적당히 떨어진 네 개의 테이블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무를 닮은 곳

창 너머로 서성이는 
연두 이파리를 보는 게 좋았다

꺼진 골목을 어떻게든 켜보려고
붉은 벽돌 아래 기다림을 걸어둔 곳

살다 보면 살아지는 걸까
살다 보면 사라지는 걸까

도산서원 가는 오르막길 한쪽에 
간판이 지워진 카페가 
꿈인지 
잠인지 모를 
비상등만 깜빡이고 있다

아쉽지만 
영업은 이번 주를 끝으로 쉬게 되었어요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만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 대전 서구 탄방동 남선공원 근처에 있던 카페 이름. 

 


<작품 해설>
물끄러미 오르막길에 선다. 폐업 안내문이 붙은 작은 카페 창문 너머로 삶에 관한 질문이 겹겹이 스며든다. 살아가는 건 살아지는 일일까, 아니면 사라지는 일일까. 연둣빛 잎사귀가 창가에 흔들리던 날, 벽돌 아래 조용히 걸어둔 기다림, 계절을 나무처럼 품고 있던 테이블 위에 남겨졌던 말들. 그 모든 순간이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서 비상등처럼 깜빡인다.  


<성은주>
-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시집 『창』, 그림책 『수박씨 발자국』이 있음  
- 현재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강의전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