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4.02.07 15:02 수정일 : 2024.02.22 23:28
'2024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막을 내렸다.
이미 수시 1차 전형을 마쳤고, 대전을 비롯해 전국 전문대학을 포함한 4년제 정규대학들은 수시 2차 모집과 내년 1월까지 초 정시모집을 통해 신입생을 최종 선발하면 대학입시가 종료된다.
40여 년 전!
1982년 시작된 대학입시는 지금과 달리, 내신 성적(학생부)을 반영하지 않고, '전국학력고사'(지금의 수능) 점수만을 보고 줄 세우듯 신입생을 선발할 때다.

지금 대학입시는 수능 만점(400-450점)을 받아도 복잡한(?) 성적 반영 비율로 대학 입학 때 수석합격자가 달라지지만, 당시는 만점(340점)을 받으면 대한민국 어느 대학을 지원해도 수석합격은 보증수표다.
오직 학력고사 점수만 보기 때문에 무조건 전국 1등인 셈으로 이 수험생이 특정 대학에 지원해 합격하면 전국 최고의 인재를 모셔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처럼 수능 등급 평균에 환산값, 학생부 반영, 환산기준 등급 등 일반인들은 총점 계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가 아니었다.

이에 따라 상당수 대학들은 '학력고사 고득점자'를 대학에 유치하려고 총력전을 펼쳤고 지방 대학은 그때도 서울에서 고득점생 단 것(?)을 다 빼먹고 나면 장학금 등 엄청난 조건을 내세워 다음 차례의 고득점자를 유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각 대학 수석 합격자를 발표해도 대학마다 성적 반영비율 등이 복잡해 수석합격자 수능 점수 의미가 퇴색되면서 뉴스거리(?)가 안 되지만, 40여 년 전에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각 대학의 합격자가 발표되면서 수석합격자 학력고사(지금의 수능) 점수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신문까지 대서특필(?) 되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대전에서 평소 'A 대학' 평판이 최고라도, 'B 대학' 수석 합격자의 학력고사(수능) 점수가 더 높으면 'A 대학'을 제치고 위상이 크게 치솟았던 시대다.
당시 화제는, 수석 합격자 고득점 순위로 대학의 수준을 평가한 것.
대전의 일부 대학은 학력고사 고득점자(최소환 서울의 SKY 차석 수준)가 지원, 수석 합격하면 졸업 후 교수 채용 우대까지 내걸었고 실제 이 수험생은 훗날 이 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고교 우수선수 스카웃 때 비공식적으로 스카웃 비용 투자처럼, 대학 입시담당자와 고득점 수험생 가족이 비공식적으로 물밑 작업을 벌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대전 시민들은 "대전 어느 대학에 몇 점 짜리가 왔더라!" 하면서 식탁 화제에 올리기도 하는 등 당시 학력고사 고득점자 유치가 대학 홍보의 1등 공신으로 부각한 것.
요즘은 복잡한 성적 반영 제도로, 대학의 최종 성적사정회를 거쳐야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는 복잡한 단계를 거치지만, 옛날에는 오직, 학력고사(수능) 점수 하나이기 때문에, 원서접수가 마감되면 성적사정회는 무시되고(?) 최고 득점 수험생이 수석 합격자나 다름없었다.
즉, 비공식이지만 대학에서 사전 물밑 작업을 벌여 유치한 특정 수험생보다 높은 점수의 수험생이 접수하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사실상 공식 수석합격자가 되는 것.
따라서 수석 합격자를 발표 날까지 기다리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해 뉴스 특종(?) 하고픈 욕심이 발한다.

최종 원서접수 날의 마감시간에 맞춰, 평소 자주 만나 酒님(?)을 자주 섬기는 입시 담당자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건다. (당시는 스마프 폰, 인터넷 보급도 거의 없었음)
"이번에 좋은 애(고득점자) 구해 왔어요?" 하면서 물으며 차례로 대학마다 전화를 돌려 확인한 후 바로 기사를 작성, 텔레비전 뉴스 아나운서 멘트가 송출된다.

"대전과 충남지역 대학의 원서접수 최종 마감 결과, 00대학 00과를 지원한 000이 학력고사 000점으로 관내 대학 중 비공식 최고 점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화했던 수석합격자가 나온 해당 대학 입시 담당자는 "난 뉴스 못 봤는데 우리 대학 뉴스 나왔다면서요? 아이고! 지원자들 성적 산출 시작도 안 했는데... 나 총장님한테 이제 죽었어요!"
그러나 죽을 일은 아닌 듯... (수석 합격자는 확실하기 때문)
"어차피 수석 합격자는 뻔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미리 썼죠! 왜! 틀려요?"
담당자는 "아니 틀린 건 아닌데유... 그렇다고 기자님이 벌써 쓰면 어떡혀유?"
다시 답변한다.

"참! 00님! 기사 내용 잘 봐유! 공식이 아닌 '비공식' 점수라고 했고, 확신도 아니고 '알려졌다'라고 썼잖아유!"
직원은 (화난 말투로) "에이! 그게 그거쥬!" (수화기 뚝! 소리)
드디어 대학에서 제시한 합격자 공식 발표일, 수석 합격자는 역시 미리 보도했던 그 학생이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다른 언론사는 모두 그날 보도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특종(?) 보도를 한 셈으로 당시에는 엠바고(특종시점 보도 약속)도 없었을 때로 부지런한 놈(?)이 특종을 할 때다.
그러나 세월이 40년 흐른 요즘에는 간혹, 대전시 등 각급 공공기관의 보도자료를 오자 탈자가 있어도 그대로 복사(?)해 쓰는 기사를 접하면서 뇌까린다.
"난 그때 너무 앞서갔지만, 발로 뛰어 쓴 창작품(?)이었지 복사하지는 않았어!"라고...
박붕준 작가 캐리커처
퇴임 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광고홍보과, 교양교직과에서 11년간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지난해 2월말 퇴임 하였습니다.
현재, 대전교통방송 '박붕준 교수의 대전토크'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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